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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것인지 교육의 영향인진 모르지만, 나는 나의 창작물이나 작업물을 타인에게 보이게 될 때면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류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초등학교 때의 일기 쓰기인데, 내가 일기를 쓰면 1차로 부모님이 읽고 품평을 해주셨고,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서 선생님께 제출하면 2차 품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기조차도 나의 솔직한 생각을 적기보단 예쁘게 꾸며지고 가꿔진 완성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다. 그렇게 1년쯤 일기를 쓴 뒤에 담임 선생님이 내 글솜씨가 출중하다며 출판사에 연락을 해 보았다고 하는데 출판사는 어린이의 글 같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잘 쓴 글이야 차고 넘치는데 잘 쓴 글을 읽으려는 사람이 굳이 초등학교 2학년 전준수의 일기 쪼가리를 볼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 어설프더라도 초등학생의 시각에서 초등학생의 글솜씨로 풀어낸 세상사란건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실수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나 완성되지 않은 것들은 감추기에 바빴다. “애어른”이란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어릴땐 칭찬인줄 알았던 그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생 전준수의 일기는 어린 아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색을 잃어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영향인지 이제 30대의 정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의 작업물, 나의 창작물, 나의 생각 따위를 누군가에게 공유할 때 항상 큰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만든 것들을 자랑하는 글 따위를 적어보려고 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써놓고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움이 밀려와서 공개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직은 비공개로 작업하고 있는) bibix라는 빌드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었는데 LinkedBlockingQueue 라는 클래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poll 메소드를 호출했을 때 큐에 값이 없으면 큐에 새로운 값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새로운 값이 들어오면 반환한다고 생각하고 구현을 했는데 어째 원하는대로 동작하질 않았다. 자바 스탠다드 API는 문서화가 잘 되어 있어서 보통은 컨트롤 B를 눌러서 해당 코드의 소스코드로 가기만 하면 문서를 바로 볼 수 있지만, 어째 IntelliJ가 LinkedBlockingQueue.class 파일을 디컴파일해서 보여주고 소스코드를 다운받아줄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아서 문서를 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글에 검색했더니 잘 정리해둔 블로그가 나왔다. 그런데 블로그 아이콘이 익숙했다. 내가 항상 고맙고 귀엽게 생각하는 동생의 블로그였다.

그 포스팅 말고도 이런 저런 글을 많이 적어놨길래 몇 개를 훑어보았다. 읽은 책에 대한 요약, 개발하면서 알게 된 것, 한 해를 마치면서 회고 남긴 것 등등 꽤나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나도 이래저래 쓸만 한 이야기들은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평생에 완벽한 창작물만 남길 수 있는게 아니라면 반쯤은 공적이고 반쯤은 개인적인 블로그같은 곳에는 어설프게 이야기를 남겨서 쌓아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항상 필생의 역작을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그냥 남겨보는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이야기해볼만 한 껀지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래놓고 보면.. 블로그에 적을 얘기가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몇 명 보지도 않을테니 그냥 편하게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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